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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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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

  • 성명 : 이설
  • 본관 : 연안
  • 생존년대 : 1849 병술 정월 24일~ 1906. 4.29
  • 약력사항 :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순명(舜命), 호는 복암(復菴)

충청남도 홍성(洪城)에서 출생하였다. 1889년 전시(殿試)에 급제하여 홍문관부수찬이 되고, 이듬해 교리·사간원 정언·사헌부 지평이 되었다. 1891년 수찬·부수찬·서동학교수·전시대독관 등을 거쳐 1894년 부응교·사복시정 응교가 되었다. 그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폐정개혁에 대한 5조의 상소를 올렸고, 이어 일본의 간섭에 의한 갑오개혁이 이루어지자 관직을 버리고 하향하였다.

1895년 10월 명성황후가 시해 당하자 김복한(金福漢)·안병찬(安炳瓚) 등과 함께 홍주(洪州)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1896년 3월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고종의 특사로 석방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일제를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다시 체포되었고, 석방 후 을사오적 암살 계획을 세웠으나 실패하였다. 고향으로 돌아가 국권피탈에 통분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자결하였다. 문집에《복암집(復菴集)》《복당창수록(福堂唱酬錄)》이 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약천 남구만(南九萬/1629~1711)
약천 남구만(南九萬/1629~1711)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의 저자인 남구만 선생은 조선 숙종때 사람으로 본관은 의령, 자는 운로, 호는 약천 시호는 문충이며 개국공신 남재의 후손으로 대사성, 형조판서대사간 등을 거쳐 영의정을 지내신 분이다.

마을위에 있는 이분의 생가터에 전통가옥 형태의 체험장을 만들어 선생의 시집 영인본을 전시하여 선생의 시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도록 한 전통가옥 형태의 체험장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 의령(宜寧). 자 운로(雲路). 호 약천(藥泉)·미재(美齋). 시호 문충(文忠). 1651년(효종 2)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56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정언(正言)을 지냈다.

60년(현종1)이 조정랑·집의(執義)·응교(應敎)·대사간(大司諫)·승지(承旨)를 거쳐, 68년 안변부사(安邊府使)·전라도관찰사가 되고, 74년 함경도관찰사가 되어 유학(儒學)을 진흥시키고 변방수비를 다졌다. 숙종 초에 대사성·형조판서를 거쳐, 79년(숙종 5) 한성부좌윤을 지냈다. 서인(西人)으로서 남인(南人)을 탄핵하다가 남해(南海)로 유배되고, 이듬해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이 실각하자 도승지·부제학·대제학·대사간을 역임하였다.

83년 병조판서가 되어 폐사군(廢四郡)의 복치를 주장하여 무창(茂昌)·자성(慈城) 등 2군을 설치하였다. 이때 서인(西人)이 노소론(老少論)으로 분열되자 소론의 영수가 되었으며, 84년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87년 영의정에 올랐다.

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득세하자 강릉(江陵)에 유배되었다.

94년 갑술옥사 때 다시 영의정에 기용되어, 96년 중추부영사가 되었다.

1701년 희빈(禧嬪) 장씨의 처벌에 대해 경형(輕刑)을 주장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퇴관, 경사(經史)·문장을 일삼았다. 송준길(宋浚吉)의 문하에서 수학,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다.시조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는 그의 작품이다. 문집에《약천집(藥泉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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